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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럼] '갑(甲)질'의 기원은? - 이연호 원장 (20150116 데일리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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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7 00:00:00

[시사 칼럼] '갑(甲)질'의 기원은?

갑의 기원은 불균형성장 정책… 정부의 후광 입은 갑들 나타나
갑은 발전자원을 독점하고, 을을 통제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아
위계적 갑을관계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위력… 시스템 개혁해야

이연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동서문제연구원장)

입력시간 : 2015/01/16 19:05:05       수정시간 : 2015.01.27 10:00:46


[이연호 연세대 교수 칼럼] 얼마 전 안면이 있는 일본인 학자에게 일본에서도 우리와 같은 갑을관계라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분 대답이 있기는 있는데 우리처럼 갑이 전횡을 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했다. 수평적인 계약관계 개념에 가깝다고 했다. 우리처럼 사회병리적인 갑을 관계는 아니라는 애기였다.

사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을관계의 핵심은 약탈성에 있다. 즉 전자가 후자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약탈성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정치경제학자인 나에게 우리나라의 갑을관계의 기원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아마 필자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 새로운 이론도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을관계 문제는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본질은 경제적 자원에 대한 권력화된 독점이 용인되는 사회적 제도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국가 좁게는 정부 그리고 대통령이다.

박정희정부는 1960년대 중반부터 불균형성장 정책에 입각한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이는 발전자원을 전후방 파급 효과가 큰 전략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입함으로써 불균형적 성장을 유도하고, 여타 산업의 발전을 견인토록 하는 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방식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그는 청년 시절 일본의 관동군이 만주국을 건립하는 과정을 보면서 해당 분야에 능력이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임을 체득했던 것 같다. 예컨대 일본군은 만주국의 경제를 운영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간여하지 않고 전문가인 민간관료를 등용해 맡겼다고 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자질과 능력은 다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갑의 기원은 박정희정부 이후의 불균형성장 정책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매우 집중화되어 있다는 점은 불균형성장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재벌 대기업 중심, 중화학 공업중심, 특정 지역 중심이라는 단어들이 보여주듯이 재벌·특정 산업과 지역에 경제적 자원을 집중시키고,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정부를 대신해서 자원을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권력은 중앙에 있는 대통령이 행사하면서 자원을 피라미드의 바닥까지 전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중간자들이 필요했고 이들이 바로 정부의 후광을 입은 갑들이었다. 위계구조상 최상위에 있는 대통령이 계선의 밑바닥 사정을 일일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친위세력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의 영을 받드는 자신들의 행동을 '애국'이라고 포장하며 을을 통제하고 심지어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다. 갑은 발전자원뿐 아니라 권력까지 수여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기초해 본다면 상대적으로 정부의 중앙집중 정도가 우리보다 약하고 지방분권적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갑을 관계가 우리처럼 위계적으로 또는 약탈적인 성격을 갖지 않은 이유가 설명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일본은 우리보다 유망 중소기업도 많고, 전문경영인들에 의해 경영되는 대기업은 하도급 관계에서 약탈적이기보다는 계약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갑의 횡포가 심하게 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생기는 이득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갑은 발전자원을 독점하도록, 그리고 을을 통제할 수 있도록 허락된 정치권력적 존재이다. 대통령이 원하는 업적,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만 하면 중앙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할당 받을 수 있었다. 시장에서 게임의 방식이 자율적이고 공정한 경쟁 중심이 아니고 대통령의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성과 중심이었다. 그래서 다분히 권력화되고 정치화된 논리가 시장에서 작동하게 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약탈의 피해자 위치에 있는 을의 행태 역시 변한다는 것이다. 을은 기회만 되면 갑에게 보복하려 하고 갑의 횡포를 최고 권력자에게 고발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정치적 보호막을 씌워준 것이 정부이니 이를 벗길 수 있는 힘도 정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갑의 행태를 모방하려 하고 자신이 군림할 수 있는 작은 을을 만들려 시도한다. 을의 행동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정부와 갑은 을을 성악설에 입각하여 보게 되고 을에 대한 감독과 규제는 강해져만 간다.

위계적 갑을관계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위력… 시스템 개혁해야

한국 경제가 압축적 경제성장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초기의 과정에서 이러한 위계적 갑을 관계는 일면 위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 또는 정부가 최하위에 있는 자원까지 알뜰하게 이용하는데 유용한 체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이제 자원 동원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더 이상 아닌 상황에서 이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아무리 창조 경제를 외쳐도 우리의 체제는 아직도 자원 동원적 형태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창조적인 을이 탄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갑이 을의 희생을 대가로 성장하는 체제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적 갑을관계의 주범은 대통령과 정부 중심의 정치화된 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경제성장에 관한 표어를 주도하는 한 전위대 역할을 하는 갑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료, 공기업, 대기업 그리고 심지어 국회가 대표적인 갑이라 불릴만 하다. 대통령의 관심사가 집중되는 조직들이니 갑이 될 수밖에 없다. 을에게 창조적이 되라고 윽박지르니 을은 창조적인 척 갑을 속이려는 동기마저 갖게 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문제는 매우 구조적이다. 사람이 바뀌었지만 우리가 운영해오고 있는 제도는 아직도 과거형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려해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갑들의 저항력은 극복하기 힘들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일차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에 갑의 기득권을 축소할 수만 있다면 이는 대단한 성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남은 임기 내에 경제적 성과를 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은 의욕 때문이다. 그래서 벌써 정부·여당에서는 옥중에 있는 재벌들을 사면하거나 가석방하자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공무원들의 임금을 올려 사기를 진작시킨다. 과거에 네오마르크시스트들이 주장했듯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국가는 자본에게 구조적으로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명박정부는 친기업주의를 표방하다가 노조는 물론 재벌에게도 등돌림을 받았다. 박근혜정부 역시 친시장주의에서 친기업주의로 변신하려는 유혹에 직면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의원 내각제로 개헌이 된다면 그 작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나마 국민 다수를 의식하는 대통령이 사라지고 나면 갑들이 집중 관리할 대상은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300명에 불과하게 된다.

대통령의 평가는 누가 하는가? 민심이 한다.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은 누가 견제하는가? 다수의 시민이 한다. 그게 민주주의이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을 지표로 보여준들 국민들이 성공한 정부로 평가할 리 만무하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연호 교수 프로필
연세대 정치학과- 캠브리지대학 박사-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현)

http://daily.hankooki.com/lpage/column/201501/dh201501161905051411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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