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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식인들의 어떤 착각" 문정인 중동및아프리카연구센터 소장 (2013.7.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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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24 00:00:00

 

[중앙시평] 일본 지식인들의 어떤 착각

2013.07.22 00:28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 체결 유보 이후 한·일관계가 바닥을 친 이래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정부가 시작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이내 무너졌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계 지도자들의 무분별한 언사가 상황을 악화시킨 주범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보이고, 외무차관 수준의 상시협의 채널 가동 정도만이 가까스로 합의됐을 뿐이다.

 

 얼마 전 필자는 도쿄에서 일본의 지인들과 함께 한·일관계가 이처럼 악화된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일본 측 인사들의 견해는 사뭇 예상과 달랐다. 영토나 역사 문제는 대외적인 명분에 지나지 않을 뿐 한·일관계가 나빠진 진짜 이유는 한국 정부의 ‘중국 기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중이 샘이 나 그러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이들은 스즈오키 다카부미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이 지난 2월 펴낸 『중국에 맞서는 일본, 복종하는 한국』이라는 책 얘기를 꺼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책이니 한번 읽어 보라는 것이었다.

 

 서울 특파원을 지낸 지한파 스즈오키 위원이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에 게재한 칼럼과 대담을 엮어 만든 이 책은 필자의 눈에 세 가지 측면에서 자극적이었다. 첫째는 중국의 부상 이후 경제와 안보상의 이유 때문에 ‘한국이 중국을 추종하고 일본을 비하하는 종중비일(從中卑日)’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과 유보한 군사비밀보호협정을 중국과는 체결하려 하고, 일본과 중단한 통화스와프협정을 중국과는 확대·연장하는가 하면, 일본을 제치고 중국과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로 그는 한국이 당분간은 ‘양다리 외교’로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를 저울질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떠나 중국을 추종(離美從中)’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른바 ‘한·중동맹’이 한국에는 ‘미국과는 안보를, 중국과는 경제를’이라는 이원적 모순관계를 해소하고, 북한 핵으로부터 보호막을 구축하는 동시에 일본에 대한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의 마찰을 애써 말리는 미국보다는 자신들을 대신해 일본과 싸워줄 수 있는 중국이 한국에 훨씬 매력적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끝으로 스즈오키 위원은 일본의 보수와 진보 모두에 “한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권고한다. 먼저 보수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냉전기 때처럼 한국이 일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진보 역시 ‘아무리 상호 교류와 이해가 깊어져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본은 한국의 이러한 친중 행보를 염두에 두고 미래 동아시아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중국경사론’ 못지않게 흥미로웠던 건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시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사이의 돈독했던 유대를 강조하며, 박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기시의 전폭적 지원 때문 아니냐고 되묻는 대목이 그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과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는 누구보다도 협력적 행보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일본 측 인사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 역시 한·일관계를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자신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한국의 외교정책을 탓하는 이들의 주장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중국이 G2 라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일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고, 한국 정부 역시 이러한 인식하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간과하고 ‘중국경사론’으로 매도하는 것은 한국을 중국에 더 기울게 하고, 일본을 고립시키게 될 섣부른 지정학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기시 유산론’만 해도 그렇다. 일본 측 인사들이 이러한 믿음을 공공연히 들고 나온다면 이는 한국의 국내 정서상 박근혜 대통령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기제가 될 수 있다. 박정희-기시 사이의 유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오히려 아베 총리가 영토 문제와 과거사에 대해 과감히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주장이 일본인 다수가 공유하는 ‘혼네(本音)’라면 어찌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시계 제로다. 우리도 노력해야겠지만 일본 지식인들 역시 냉철한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기사원문링크 : http://joongang.joins.com/article/650/12130650.html?c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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