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1960년대 한국에 케인스 경제학을 처음으로 들여왔으며 68년부터 20년간 대학 강단에 섰다. 88년 노태우 정부에 입각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95년 민주당에 입당, 초대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97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한 뒤 초대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1928년 강릉 출생 ▶서울대 상과대 전문부 ▶UC 버클리 대학원 경제학 박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 ▶15대 국회의원 ▶현 서울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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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같은 강한 인상은 아니었다. 상당히 부드러웠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할 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확실히 밝혔다.”
-박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나.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정부가 국정에 확실한 방향을 정하고 정책을 굳건히 추진한 예가 없다. 철학 없이 국가경제를 이끈 거다. 그러다 보니 발전은 했지만 경제에 문제가 많이 생겼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그때그때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된다. 지금 대통령이 당면한 현안들이 워낙 복잡다기해 고충이 많을 거다.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으니 중요한 부분은 계획과 우선순위를 세우고 거기에 투입될 자원과 산출될 결과를 비교해야 한다. 그냥 내버려 둬서는 경제가 안 되니 일종의 계획을 도입해야 한다’는 거다.”
-그 계획의 핵심 내용은 뭔가.
“첫째는 고용, 인구, 교육 등 사람에 대한 전망이고 둘째는 재정이다. 결국 경제는 사람과 돈의 관계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정책이 제대로 돼 가는지 늘 검토하고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 경제계획을 세우면 대통령한테 부담도 작고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이를 실행할 실무팀은 소수여야 좋을 것이라고 박 대통령에게 얘기했다. 이 말이 바깥에 알려지면서 ‘조 전 부총리가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난 박정희식 모델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부엔 ‘물가국’이라는 게 있었다. 물가가 올라가면 물가국장이 잘못했다고 문책당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 아닌가. 내 말의 요지는 경제운용에 계획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메모도 하면서 경청하더라. 내 얘기가 끝나자 ‘그러니까 정책이나 조직 간에 콘플릭트(conflict:갈등)가 생기지 않도록 잘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지요?’라고 묻더라. 내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다.”
-박 대통령과 원로들이 나눈 얘기 중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면.
“다들 안보 문제를 얘기했다. 백선엽 장군은 ‘평화를 위해선 강력한 동맹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북한 핵은 적극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도적 대북 지원의 필요성은 수긍했다.”
-박 대통령이 5년 동안 꼭 해결해야 할 일을 꼽는다면.
“박 대통령에게 언젠가 ‘욕심을 많이 갖지 말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1년은 휴가 빼고 뭐 빼면 얼마 안 된다. 3년만 지나면 레임덕이다.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과제는 정부·금융·과학기술·교육개혁이다.”
-우리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선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 돌파구는 뭔가.
“경제성장률이 2009년 이래 꾸준히 떨어져 올해 예상치가 2.2%까지 내려갔다.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인력이 줄고, 출생률이 낮은 게 첫째 요인이다. 또 우리 과학기술 수준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 교육이나 정부, 정치권의 생산성도 너무 낮다. 이런 나라는 절대 제대로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
-정부와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우파도 좌파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너무 집착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해방사상’을 배워야 한다. 해방을 하는 사상이 아니고, 사상을 해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인도 정당도 정부도 모두 실체적 사실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만 한다. 아주 나쁜 태도다.”
-과학기술 개혁을 주문했는데 폴 케네디도 강대국의 흥망에서 ‘국력은 경제력이고, 경제는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중국 정부의 제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에 보면 ‘나라 발전은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 인문은 국가의 기초이고, 과학기술은 경제의 기초다. 모든 국민은 국가에 교육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에겐 이런 태도가 없다. 과학기술을 말로는 강조하지만 연구비가 너무 적고, 그나마 나눠먹기 식이다.”
-교육개혁 방안 중 하나로 교육부가 초등학교·중학교만 관할하고 고교·대학교는 자율적으로 놔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고교까지는 교육부가 관할해야 한다. 우리나라 인문교육은 죽었다. 역사를 안 가르친다.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뭘 하겠나.”
-대한민국 정치는 산업화와 민주화 양대 세력이 기득권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우리 역사는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투쟁과정이었다. 조선왕조의 사색당쟁이 모두 기득권 싸움이다. 새로운 이론도 기득권을 수호하는 수단이었고 괜찮은 사람이 나오면 싹부터 잘랐다. (조선) 500년 동안 개혁 한 번 못해 애석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어떻게 보나.
“신자유주의는 이제 영원히 끝났다.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를 파괴하고 미국경제를 거덜 냈으며 금융위기를 만들어냈다. 공산주의 이론이 허황된 유토피아론인 것처럼 신자유주의 이론도 자유주의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건데 이 또한 완전히 잘못된 유토피아론이다. 신자유주의를 장기간 실천해 온 미국 경제가 망가졌다. 이제는 신자유주의가 재등장하지 못한다고 본다. 문제는 미국 공화당에 신자유주의 향수가 많다는 거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존 커널리는 ‘달러화는 미국 돈이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므로 문제가 생기면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행에 감독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된다.
“주는 게 좋다. 한국은행 사람들은 원래 관료가 아니다. 그러니까 감독권을 줘도 큰 잘못은 안 나올 거다.”
-메가뱅크(대형은행)를 만들자는 논의도 나오는데.
“그런 주장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망친 길이다. 도박을 하듯 금융상품을 팔아 이익을 내는 투자은행으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피해가 작았던 건 금융의 발달이 낮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역설이지만 금융은 저발달이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 임원의 연봉을 제한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 유럽에선 임금 상한을 정하면서까지 기업을 개혁하려고 투쟁한다. 반면 미국에선 기업 이사들의 연봉이 너무 많다. 미국 70대(大) 주식회사 이사들의 평균 연봉이 장관급인 연방 증권금융위원회 의장의 99배란 보고서를 봤다. 이래선 안 된다.”
-우리도 주요 은행장이 스톡옵션을 포함해 연봉을 40억원가량 받으니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그런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은행 책임자가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민영화인데 어떻게 봐야 하나.
“민영화가 국영, 공영보다 나으니 전부 민영화해야 한다는 건 곤란하다. 민영화해도 조직이란 건 커지면 관료화된다.”
-정부가 민영화된 KT나 포스코·KB국민은행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 역할을 강화하되, 자본주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기본 철학은 있어야 한다. 그때그때 임명된 기업 회장들이 자기 마음대로 투자해선 안 된다. 포스코는 자회사가 수십 개나 돼 문제다.”
-성장과 복지의 양립이 가능할까.
“복지를 하면 성장이 안 된다거나 성장만 강조하면 복지가 안 된다는 보수·진보의 논쟁은 다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저성장시대에 돌입했다는 거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아무리 성장해도 고용이 적게 발생해 복지를 증대하기 힘들어졌다. 따라서 성장방식 자체를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까지 완전히 무시해온 분야, 예를 들어 농림수산업까지 포함해 성장 가능한 분야가 뭔지 찾고, 선택을 해야 한다. 과거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이라며 버렸지만 난 반대했다. 지금은 섬유산업이 다시 각광받고 있지 않나.”
-성장 방식을 전환하는 방안을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결국 노동을 많이 창출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중소기업 살리기가 중요하다. 아무리 작은 업체라도 열 사람에게 월급 주는 건 어마어마한 것이다. 국가가 그런 걸 장려해야 경제가 된다.”
-북한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독일 통일이 성공한 것은 국민의 마음이 통일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조성하기 위해 서독 정부가 그만큼 노력을 했다. 동독에 고속도로를 만들어 주고, 대가 없이 지원도 했다. 그러니까 동독에서 통일운동이 일어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도 통일을 하자면 남북한 국민에게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통일돼도 같이 살 수 없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주는 문제는 어떻게 보나.
“북한에 지원을 해줘 봐야 고맙다는 말이 없다. 그래도 지원을 해준다면 말없이 해줘야지, 자꾸 큰 인심 쓰는 척하며 지원하니 효과가 없는 거다. 묵묵히 지원해주면 북한에서 ‘역시 우리 동족이 다르긴 다르네’ 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
-살아온 궤적을 보면 늘 도전해온 인생인 것 같다.
“도전을 피하진 않았다. 1995년 대학 후배인 김근태 의원 등이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했는데 자꾸 피하면 이중 인격자 비슷하게 된다고 생각해 응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서 떨어져봤자 낙선밖에 더 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인생에서 도전은 아주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6·25 당시 육사 교관을 지내다 미국 유학을 택한 사연은 뭔가.
“교관 생활을 하다 57년 제대한 뒤 뭘 할까 생각하니 가진 게 내 몸 하나뿐이었다. 궁리 끝에 미국 대학에 꾸준히 지원서를 보냈더니 1년 과정으로 받아주겠다는 답이 왔다. 미국에서 탈색된 군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대학을 다녔다. 1년 뒤 학비가 없어 종강 때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살리기 위해 한국의 케인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고, 장학금도 받아 가까스로 유학을 마쳤다.”
-멋있게 나이가 드는 비결은 뭘까.
“사람이 나이 들수록 자꾸 좋아지는 게 멋있는 인생이다. 마음도, 능력도 좋아지는 게 멋있는 인생이다. ‘저 양반 늙어가면서 추해지네’ 이런 소리를 듣게 되면 곤란하다. 빌 게이츠처럼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건 아니다. 돈은 많이 필요 없다. 골치만 아프다.”
-늘 공부하는 모습인데 공부와 인생은 무슨 관계인가.
“공부는 하나의 즐거움이자 좋은 친구다.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보문고에 가서 외상으로 책을 산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책을 두 권 주문하고 찾으러 갔는데 지갑을 안 갖고 왔더라. 점원에게 ‘내가 자주 오니까 다음에 갚겠다’고 하니까 책을 내주더라. 요즘 읽는 책은 중국공산당의 성공 요인을 민족주의 공세에서 찾은 나라의 수치를 잊지 말라(Never forget national humiliation)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성공적인 인생이란 나이를 먹어갈수록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든 개선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 가치가 있으려면 오늘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낫고 올해가 지난해보다 나아야 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뭔가 좋아진 게 있다, 이게 인생이어야 한다.”
이광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그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17, 18대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2010~2011년)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다. 1965년생(48세)으로 원주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