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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⑨ 헌법학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 이광재 객원교수 (20130714 .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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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23 00:00:00

 

“개헌, 집권 초 추진해야 … 현직 대통령 중임 예외로 허용 땐 탄력 받을 것”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⑨ 헌법학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대담·글=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 제331호 | 20130714 입력
사흘 뒤면 제65주년 제헌절이다. 1987년 개정된 우리 헌법은 26세라는 유례없는 ‘장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 속에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철수(80·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헌법학계의 태두다. 시대의 고비마다 깊은 통찰을 줬다. 박정희정부 시절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했다가 교수직을 잃을 뻔했다. 80년 ‘서울의 봄’ 시절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해 군부와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했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연립정부를 통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정치문화를 타협과 공존의 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그의 소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하겠다면 집권 초기인 지금 독일식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 교수를 지난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뒤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철수 한국 헌법학의 기초를 다진 대표적인 헌법학자. 『헌법학』 『한국헌법사』 등 관련 저서를 20권 넘게 냈다. 대표작인 『헌법학개론』은 지금도 법학자들의 필독서로 통한다. 1933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 루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과 미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법학을 연구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대 교수와 제주 탐라대 총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겸 명지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 회장과 한국헌법연구소 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고문과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한국교육법학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제자들과 함께 설립한 한국헌법연구소(1990)에서 토론과 연구를 해왔으며 현재까지도 이사장을 맡아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1967~73)과 한국방송공사 이사(2000~2003) 등 언론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1993)을 받았고 자랑스런 서울법대인상(2005)과 대한민국 법률대상(2009)을 수상했다.

-법이란 무엇인가.
“학설로는 ‘권력자의 실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현실로 보면 ‘인간이 이성에 따라 살자는 행동 규율’을 만든 것이 법이다. 인간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상호 존중하는 인간의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의 으뜸인 헌법이란 무엇인가.
“국가를 형성함에 있어 국민이 만든 기본법이자, 최고의 법이다. 국회의원이 만드는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국민의 총의로 만드는 법이다. 헌법에선 법치주의·권력분립·국민대표제 등 국민주권의 원리가 제일 중요하다. 다만 국민의 기본권도 절대적인 건 아니다. 국가안보와 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게 공공복리다.”

-왜 헌법을 공부했나.
“중학교를 대구에서 나왔다. ‘한국의 모스크바’라 불린 그곳에선 교실에 경찰이 들어와 학생들을 잡아갔다. 좌우 대립이 극심해 건국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졸업 후 독일로 유학 갔는데, 동·서독으로 분단됐지만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적었다. 한국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통일을 이뤄야 하기에 통일헌법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 길이 나의 삶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배심원 501명 중 361명의 찬성으로 사형당하는 것을 본 플라톤은 ‘다수결이 과연 진리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국민을 대표하는 경우 현실적으론 다수결밖에 없다. 다만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적인 법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국민이 법을 바꾸라고 청원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도 안 될 땐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저항권을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70년대 긴급조치는 불법적인 권력행사여서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항권’이라는 걸 학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독일에선 ‘흰 장미’란 학생단체가 나치즘에 항거하다 지도부가 처형당했다. 저항권의 일환이었다. 신학적으로도 ‘미친 마부에겐 말을 맡길 수 없다’는 얘기가 있다. 국가권력의 남용을 도저히 시정할 수 없을 때 최후의 헌법 보장 수단으로 국민 저항권이 있는 것이다.”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고초를 겪었다.
“내 교과서에 유신헌법은 ‘현대판 군주제도’라고 썼다. 책이 압수됐고 중앙정보부가 ‘북한이 방송에서 김철수와 내통했다고 주장한다’면서 나를 끌고 갔다. 일주일 뒤 풀어주면서 ‘책을 수정하라’고 해서 문제된 부분을 고쳤지만 그래도 1, 2, 3판 모두 몰수됐다. 강의도 못하게 하고 교수직에서 쫓아내려 했다. 이때 미국에서 도움을 줘 미국에 반년, 독일에 반년 나가 있었다.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렵사리 교수 재임용이 됐다. 역사는 흐른다.”

 
-분단을 고착시킨 헌법은 남북 가운데 누가 먼저 만들었나.
“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 좌우 대립이 너무 심했다. 좌우익에서 양측이 모두 인정한 유진오 교수와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 심취한 윤길중에게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헌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북한에선 ‘대한민국이 먼저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도 헌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국가 체제를 먼저 만든 건 북한이다. 47년께에 벌써 김일성 중심의 국가권력이 완성됐다. 남로당에서 ‘사회민주주의적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북한은 이를 일축하고 공산주의 헌법과 일당수령독재를 채택했다.”

-제헌헌법이 주는 교훈은?
“남북이 뜻을 모아 헌법을 만들었으면 통일이 됐을 텐데 실패한 게 너무 아쉽다. 오스트리아는 4개국 점령하에서도 통일을 이뤘다. 정당연립으로 독립을 쟁취한 거다. 그런데 우리 지식인들은 너무 이상주의적으로 이념을 신봉해 통일에 실패했다. 독일도 서독 주도로 통일했지만 동독인 상당수에게 공직을 줬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부터 동독 출신이다. 또 통일 뒤에도 공산당을 인정하고, 공산당원의 공직 진출을 허용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성공 원인은.
“바이마르 헌법이라는 사회민주적 전통이 있었다. 또 공산체제로는 복지와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극우적이지도 극좌적이지도 않았고 대연정으로 좌우 합작 정부를 만들었다. 또 미국·소련과 다 가깝게 지냈다.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 통일을 가장 반대했지만 이를 극복할 외교력도 있었다. 민주적 역량과 경험이 있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1 1979년 12월 소설가 한말숙씨(왼쪽)와 자리를 함께한 김철수 명예교수. [중앙포토] 2 1980년 9월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가운데) 등과 정치상황을 놓고 대담하는 김철수 명예교수(왼쪽).

-우리는 지금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심하다.
“양당제만 고집하지 말고 다당제로 연립정부를 형성하는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 완충 지대, 합리적 지대를 만들어야 나라가 앞으로 간다.”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갈등을 심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면 결선 투표를 해야 된다. 지금 제도로는 40%도 안 되는 지지율로도 당선만 되면 모든 걸 다 가진다. 그러면 정당성이 떨어진다. 연립정부를 형성하는 게 낫다. 독일은 단독 정부를 한 적이 거의 없다.”

-87년 헌법을 손보자는 의견과 그냥 두자는 의견이 갈린다.
“87년 체제가 낡았다는 주장이 있는데 뭐가 낡았다는 건지 모르겠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개헌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4년 중임제) 개헌에 찬성하지 않는다.”

-이유는.
“4년 중임제는 레임덕이 더 빨리 올 수 있다. 미국의 예에서 보듯 4년 중임제 한다고 부정부패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거가 빨리 돌아와 선거자금으로 인한 부정부패와 포퓰리즘 발호 가능성이 크다. 또 집권 후 첫 1~2년은 대통령 수습기간이고, 임기 후반이면 선거운동 기간이 된다. 재선돼도 2년만 지나면 레임덕이 된다.”

-단임이라도 5년은 국정운영에 짧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6년 단임제를 주장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년제 단임을 하겠다고 했고, 사실상 8년 집권했다. 그는 87년 개헌을 하면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만들었다. 후임 대통령 노태우 위에서 상왕 노릇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노태우를 ‘물태우’로 보고 부려먹으려 생각한 거다. 그런데 선거 결과 여소야대가 되니 노태우가 전두환을 백담사에 보낸 것이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단임제가 낫다는 거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려면 임기 초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임제 개헌을 임기 말에 추진했다. 임기 초에 추진했으면 됐을 수 있었겠지만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현직 대통령은 중임을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만은 예외로 해 현직 대통령도 중임을 허용하면 인센티브로 작용해 열심히 개헌에 나설 수 있을 거다.”

-우리 헌법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승자 독식이다. 그러니 선거운동이 너무 격렬하고 국민분열이 심하다. 대통령의 권한을 너무 강화해선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의원내각제를 주장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상징으로 하고, 정치는 국무총리가 하는 게 옳다.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된 사람으로 하되 정부가 국회에 대해 불신임과 해임 건의안을 낼 수 있고, 대통령은 총리 해임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지면 된다.”

-일본을 보면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뀐다. 우리도 내각제가 되면 정국이 더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일본이 지금이야 그렇지만 예전엔 자유민주당이 55년간 권력을 독점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분파가 너무 많이 생겼다. 지금 일본엔 정당이 10개나 있다. 어떤 정당도 다수당이 못 돼 연립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예전에는 자유민주당·공명당이 연립을 하면 됐는데 민주당 집권 뒤 당이 워낙 많아지니 그게 어려워졌다. 민주당이 약해 국민 신임을 못 받으니까 총리가 1년마다 바뀐 거다. 내각제란 제도의 문제점이 아니라 선거에 따라 어떤 정당이 이기느냐가 문제였던 거다.”

-소선거구제인 우리나라에선 다당제가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비례대표제를 가미하자는 것이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중선거구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게 독일식이다. 독일의 경우 의원의 절반은 소선거구에서, 나머지 절반은 정당선거구에서 선출된다. 의석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독일은 연방제인데, 주마다 비례대표제 리스트가 있다. 주 선거를 치를 경우 1인2표제를 도입해 한 표는 사람에게, 한 표는 정당에 투표한다. 우리도 이런 제도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정치가 죽기 아니면 살기 일변도다.”

-국가 갈등을 조정하고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양원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원제의 경우도 독일식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방 정부의 대표자가 상원의원이 되는 것이다. 상원에 각 주의 대표가 모이니까 지방의 권익을 상원에서 대표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지방의 힘이 강화될 것이다. 독일이 이럴 수 있는 건 연방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연방제로 가야 한다. 작은 나라에서 왜 연방제를 하느냐고 반박하는데 나라 크기는 상관이 없다. 스위스는 우리보다 더 작은 나라지만 연방제로 국정을 잘 꾸려가고 있다. 상원은 연방제를 하고, 하원은 지역구 대표들로 채우면 좋다고 본다.”

-국회 선진화법을 우려해왔는데.
“의원의 60%가 동의하지 않으면 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면 식물 국회가 될 수 있다. 당초 여야가 이 법을 만들 땐 다가올 총선에서 서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할 것 같으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으니 지금 후회하고 있을 거다.”

-‘경제민주화’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하나.
“경제민주화는 좋다. 경제민주화는 제헌 헌법에선 ‘사회 정의에 입각한’으로 정의돼 있었다. 이때 ‘사회 정의’는 ‘사회주의적 경제’와는 다르다. 사회 정의란 건 정치·경제·사회정의 가운데 사회 정의를 중심으로 하자는 것이다.”

-헌법은 우리 경제체제 조항을 ‘사회적 시장경제’라 규정했다.
“내가 처음 시작한 말이다. ‘최소한의 규제와 최대한의 자유’가 사회적 시장경제다. 독일의 경우 경제민주화란 말은 없고 ‘경영민주화’라고 한다. 경영자와 근로자의 평등을 뜻한다. ‘공동결정법’이라는 법 아래 노사 동수의 감사위원들이 중요 사안을 공동 결정한다. 그래서 독일 근로자들은 데모를 하지 않는다. 또 근로자 지주법이 있어 근로자들이 주식을 가진다. 경영에서 이익이 나오면 노동조합에 이익청구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독일의 근로자 주식은 얼마나 되나.
“회사마다 다르다. 근로자들이 주식을 많이 갖고 싶으면 노동조합이 사면 된다. 우리나라도 근로자 지주법이 있어 근로자가 주주다. 그런데 주주가 어떻게 파업을 하나. 그게 문제다. 독일에 있을 때 TV만 보면 현대차 파업뉴스가 나왔다. 독일인들이 ‘한국 망한다’고 했었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데, 데모한다’고 말이다. 결국 외환위기를 당해 망하지 않았나.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 국내 공장의 생산량이 중국·미국 공장 생산량의 30% 선에 불과한데 월급은 더 많다.”

-경제민주화는 좋지만, 대기업을 해체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가만히 있겠나. 해외로 나가버리면 그만이다. 삼성전자 주식도 외국인이 더 많이 갖고 있다.”

-감사원을 국회에 두자는 주장이 있는데.
“감사원이 해온 회계감사권을 국회에 줘 결산감사와 함께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국회 결산 감사가 허술하니 돈이 줄줄 샌다. 감사원은 행정부에 두고 회계감사는 국회에 보내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런 나라가 많다.”

-기초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의 정당 공천 배제는 어떻게 보나.
“문제는 정당이 아니라 의원이 공천한다는 거다. 의원 개인이 단체장, 지방의원들을 컨트롤해 문제가 생기는 거다. 서로 경쟁자가 되어야 한다. 또 의원들이 지방의회를 너무 무시하는데, 거기서 정치를 배워야 한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어떻게 봐야 하나.
“도지사가 군수를 임명하는 건 괜찮고, 시장이 구청장을 임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광역행정이니 구청장도 인구가 많다. ‘도’와 별 차이가 없다. 이럴 땐 의원내각제적인 운영을 했으면 좋겠다. 지방의회에서 구청장을 뽑고 불신임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노력해 구축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횡재를 바라지 말고, 자신의 능력과 직분을 최대한 살려 국민에게 기여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안 낳으려 하는데 국가·사회를 위해선 후손들을 낳아 키우며 희생을 해야 한다. 옛날의 정겨운 가족제도와 이웃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눈높이를 높이지 말고 낮춰서 행복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나.” 


이광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그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17, 18대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2010~2011년)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다. 1965년생(48세)으로 원주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소선거구제에선 국민 아닌 당에 충성 비례대표 강화해야 승자독식 사라져”

이종찬 전 의원이 말하는 정치혁신

대담=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 | 제331호 | 20130714 입력
 

이종찬 1936년 중국 출생. 경기고·육사 졸업. 주영 대사관 참사관을 지낸 뒤 11대 국회에 민정당 의원으로 당선. 이후 14대 국회까지 4선 의원을 지내며 민정당 사무총장·원내총무·정무1 장관을 역임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제22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현재 우당장학회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철수 명예교수가 분권형 대통령제와 연립정부 구성을 통한 정치혁신을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다. 군인과 외교관, 국회의원(4선)과 정보기관 수장을 두루 역임한 이종찬(77·사진) 전 의원을 인터뷰했다. 김 명예교수가 꿈꾸는 새 헌법 구조를 냉혹한 권력정치 현실 속에 착종시킬 방법론을 듣기 위해서다. 이 전 의원은 우리 정치에서 가장 먼저 수술할 부분으로 소선거구제를 꼽았다. 극단적인 대결정치와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선 비례대표제 강화와 다당제에 바탕한 연립정부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오랜 공직과 정치인 경험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적 과제는 무엇인가.
“정치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와야 한다. 정치가 비전과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여야의 극단적인 대결구조가 사라져야 한다.”

-정치권에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보자. 정말 NLL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면 이렇게 더럽게 싸울 일인가? 중요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정치 공방거리로 싸우는 거란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승자 독식구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다. 국정원 사건도 한심한 일이다.”

-국정원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국정원은 이미 국가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본연의 기능을 잘하면 된다. 사람만 잘 쓰면 아무 문제가 없다. 국정원 내에는 친여, 친야가 다 있다. 국가 안보, 즉 간첩 잡자고만 하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러나 국정원이 정권의 안보를 얘기하는 순간 다 새고 만다. 원세훈 전 원장은 부하들이 다 자기 사람인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원장이라도 명분 없는 얘기를 하면 순종하지 않는다. 국정원은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이지 정권을 위해 있는 기구가 아니다.”

-김철수 교수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데.
“현행 헌법상 이미 분권형 대통령제다. 총리의 권한이 막강하다. 장관 임명제청권을 갖고 있다.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 과거 정부에서 총리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얼마나 고전했는가. 현행 헌법하에선 동거 정부도 가능하다. 이렇게 총리의 역할이 크지만 우리 현실에선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회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국회로는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한다. 거물 정치인이 나와야 국회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 역량이 커져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연립정부를 통한 협력적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도 경험이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김종필(JP) 당시 총리에게 장관 추천권을 줬다. 두 사람 다 서로 힘을 모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 DJ-JP 연립정권은 IMF 외환위기를 안정감 있게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JP는 ‘DJ의 리더십은 열려 있는 리더십’이라고 직접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측근들이 잘못했다. 그 결과 양측 간에 포용의 폭이 좁아졌다. 결국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계기로 갈라서게 됐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다당제다. 연합을 통해 정부를 구성한다. 앞으로 한국 정치가 깊이 연구할 부분이다. 상호 연대하고 존중하는 정치가 자리 잡아야 한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맡는 인물도 중요하지 않나.
“좋은 인물들이 정당과 국회에 들어가야 정치가 바로 서는데 그렇지 못하다. 1개 지역구에서 1인만 뽑는 소선거구제 때문이다. 승자독식 구조여서 정당 보스의 공천권 위력이 커졌다. 의원들이 국민이 아니라 지도부의 눈치를 보게 됐다. 전국적으로 40%를 받아도, 의석 수가 과반이 될 수 있고 거꾸로 20%에 그칠 수도 있다. 특정 지역에선 한 정당이 40%를 득표해도 1석도 못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구도가 극심해져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가 된 거다. 소선거구제가 88년 도입될 때 박태준 의원과 나는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당시)이 전두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찬성했다.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도 반대하다가 어느 교수의 의견을 듣고 돌아섰다.”

-소선거구제가 지역갈등에도 영향을 미치나
“그렇다. 영남에서 진보 인사가 얼마나 당선되나? 지금은 예전보다 퇴보했다. 영남에서 민주당 당선이 어려운 건 물론 호남에서 민주당이 양보하지 않으면 진보당 후보도 당선되기 어렵다. 호남·영남에선 공천이 곧 당선이다 보니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절대 충성한다. 영호남에서 독자 출마한 인재가 40% 넘게 득표해도 줄줄이 낙선한다. 주류 정당으로 출마했으면 압도적으로 당선될 인물들이다. 너무 아깝다. 새누리당이 영남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각각 기득권을 내려놓는 용단이 필요하다.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을까?”

-소선거구제에선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 정치가 무력화된 이유의 하나가 소선거구제 도입이다.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을 땐 다나카나 다케시다 등 거물 정치인이 많이 탄생했다.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 정치권이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서 큰 그림으로 큰 정치를 할 인물들이 사라지고 정치 졸물들이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얼마전 일본경제단체연합도 중선거구제를 재검토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좋은 인물이 당선될 수 있는 제도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 아닌가?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지역구에선 낙선했지만 비례제도로 당선됐다. 콜이 정치의 중심에 있었기에 독일의 통일이 가능했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정치의 대표적 이론가다. 지역구에서 단 한 번 당선됐다. 그때 ‘여러분은 지역구가 아니라 국가의 국회의원을 뽑은 것이다’고 주장했다. 다음 선거에선 바로 낙선했다. 선거는 제도만 따질 게 아니라 국민성의 차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의 선거제도는 어떤가.
“미국은 다수 대표제를 채택하지만, 유럽 국가 대부분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혼합시스템이다. 그러니 투표율도 높다. 국민들의 복지 요구도 잘 반영된다. 국민들의 심성이 냉정한 편인 북유럽 국가들은 지역구에 소선거구제가 많다. 반면 국민들의 심성이 감성적인 남유럽 국가들은 지역구에 소선거구제가 거의 없다. 우리도 남유럽과 비슷한 감성적 투표 성향이 있다. 정치적인 쏠림 현상을 막으려면 소선거구제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우리도 무공천제를 해 본 적이 있다. 그러자 ‘내천(內薦)’이란 게 생겼다.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 기반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 내천 방법을 동원하고 선거운동을 했다. 무공천제는 유명무실해졌고, 결과적으로 더 문란한 공천제가 되고 말았다. 정치의 본령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국회와 국민들 간의 거리감이 더 커지고 있다.
“올바른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같은 소선거구제로는 의원들이 국민이 아니라 당에 충성하게 돼 있다.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지역구에 매달리지 않고 국가 대사를 다룰 여유가 생긴다. 또 실력 있는 사람이 지역구에서 당선돼 당 지도부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그런 풍토 위에서 정치 거물들이 탄생한다. 결국은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의 문제다.”

-방울을 달 주체는.
“여야가 합의해 정치개혁 논의기구를 큰 틀에서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 나아가 대한민국호가 위기를 맞았다는 인식을 갖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남북 문제가 중요해진 때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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