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East and West Studies • Yonsei University

언론소식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⑭ 소설가 조정래 - 이광재 객원교수 (20130922. 중앙sunday)
  • 관리자
  • |
  • 3263
  • |
  • 2013-12-23 00:00:00

“박근혜 대통령, 비정규직·남북관계·포용인사 해결하길”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⑭ 소설가 조정래

대담·글=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 제341호 | 20130922 입력
작가 조정래(70·사진)는 하드코어다. 새로 낸 책 『정글만리』는 원고지로 3615장이다. 바닥에 세우면 어른 가슴 높이 두께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 그동안 쓴 소설을 원고지로 쌓으면 몇 층짜리 건물 높이에 맞먹는다. 그는 컴퓨터 대신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고, 휴대전화조차 없다. 설 연휴 빼고 1년 362일, 매일 12시간 넘게 30장씩 글을 쓴다. 그는 이런 생활을 ‘황홀한 글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사는 결국 노동이고 모든 노동은 치열함을 요구할 뿐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씨는 오전 6시 일어나 운동을 하고 9시에 서재로 ‘출근’해 집필에 몰두한다. 뻐근하면 보건체조를 한다. 술은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새벽 2시까지 글을 쓰다 잔다. 그를 찾아온 문학 지망생들은 “이렇게 해야 소설이 되는 거라면 작가의 꿈을 접겠다”며 무릎을 꿇는다. “내가 미쳐 있어. 새것을 배우는 기쁨, 그리고 내 글을 많은 이가 더불어 읽어주는 희열이 날 미치게 해.”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달리는 천리마, 조씨를 지난 주말 서울 봉은사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문학이 죽고 있다. 장편 대신 1인칭 사소설이 판치고 무라카미 하루키만 본뜨고 있다. 후배들은 제발 우리 역사를 치열하게 다뤄 달라”고 힘줘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비정규직 해결, 남북관계 개선, 정파를 초월한 인재 등용을 당부했다.  
 

조정래 1943년 생. 전라남도 승주군 선암사 출생. 보성고·동국대 국문과 졸업. 70년 ‘현대문학’에 소설 『누명』으로 등단했다. 우리 현대사를 소재로 한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주요 작품으로 『황토』 『유형의 땅』 『불놀이』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 춤』 등이 있다. 최근 인터넷 포털에 연재해온 장편소설 『정글만리』를 책으로 내 베스트셀러가 됐다. 월간문학 편집장과 민예사 대표, 한국문학 주간을 지낸 뒤 동국대 국문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문학상과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노신문학상광주문화예술상만해대상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영어와 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 등으로 번역돼 해외에서 출간됐다. 그의 작품은 분단과 6·25, 산업화와 민주화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종횡으로 누비며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군상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구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전쟁의 상흔을 그린 대작이 많다. 그러나 국내에선 6·25나 4·19, 5·18을 다룬 위대한 작품을 찾기 힘들다. 이유가 뭔가.
“300여 명에 달하는 우리 평론가들 메인스트림은 분단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엔 국가보안법이 있다는 거다. 국보법을 넘어서야 사실에 근거한 작품을 쓸 수 있다. 맨몸으로 가시덩어리, 탱자 울타리를 뚫고 가야 하는 거다. 그러나 작가는 혁명가가 아니지 않은가?”

 
-글을 쓸 때 국보법으로 인해 어떤 고충을 겪었나.
“『태백산맥』을 쓸 때 고난을 각오했다. 그럼에도 400만 부 넘게 팔렸다. 뉴스위크지는 ‘앞으로 10년 내에 이런 작품이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엄중했다. 나를 좌파로 몰아붙였고 새벽 2시에 ‘죽이겠다, 집을 폭파한다’는 협박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 결국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11년 뒤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무죄가 되었다.”

-『태백산맥』을 쓰게 된 배경은.
“38세에 내 삶을 찾아 나섰다. 1980년 5·18 직후 아내·아들과 광주를 찾았다. YWCA 건물에 박힌 총탄 자국을 셌다. 350개까지 세다 눈물이 앞을 가려 포기했다. 마음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 40대를 눈물로 보낼 수는 없다고 마음먹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분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태백산맥』 이후 좌파라는 공격을 받았지만 『한강』에선 고 박태준 회장을 영웅으로 그렸다.
“작가는 시대 현실을 정직하고 용기 있게 만나야 한다. 질기고 긴 군부 독재가 국민에 의해 무너졌다. ‘이젠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의 눈부신 경제 발전은 어디에서 왔나’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자 여러 명을 만나봤다. 포항제철과 중동에서 벌어들인 오일달러가 경제 성장의 핵심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박태준 회장을 취재하게 됐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박 회장은 육군사관학교 학생시절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란 좌표를 세웠다. 그 좌표에 따라 박태준은 포항제철을 만들어 냈다. 그의 열정은 쇳물이 되어 한국 경제의 거대한 산맥을 만들었다. 나는 소설을 통해 영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박태준 회장 비문에 ‘한국 경제의 아버지’라고 직접 썼다.
“그를 취재하면서 강력한 의지와 순수한 애국심을 봤다. 그는 포항제철을 떠날 때 ‘후임자들이 스톡옵션을 받는다면 할복하겠다’고 했다. 주식의 1%도 갖지 않았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으로 세운 포항제철이 지금 표류하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박 회장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우리 기업인들도 박 회장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부자가 존경받고 선진국이 된다.”

-중국 철강업체가 박 회장 추모사업을 후원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그런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덩샤오핑이 일본에 ‘포항제철 같은 회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일본은 ‘당신 나라에는 박태준 회장 같은 사람이 없어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에 중국은 박 회장을 경제고문으로 영입해 국빈으로 대접하며 수업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 회장을 탄압할 때 일어난 일이다. 국내에 박 회장 때문에 돈을 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박 회장이 나라를 위해 일한 게 헛된 게 아님을 우리 정부와 사회가 보여줘야 할 때다.”

-작품을 놓고 보수·진보 양측에서 공격을 받기도 했다. 보수와 진보란 무엇이라 보나.
“인간사에서 탄생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사람도, 사회도, 보수도, 진보도 모두 완벽하지 못하다. 그게 현실이다. 보수와 진보는 둘 다 모순을 갖고 있다. 작가는 이걸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작가 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작가는 인생을 총체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역사를 통해 과거를 알고, 사회를 통해 현재를 인식하여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다 문제가 있다. 그런 모순된 현실을 타파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앙드레 말로나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한 에밀 졸라,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전한 바이런은 모두 시대의 아픔을 함께했다. 그 결과 위대한 작품을 인류에 선사했다. 작가는 인간에게 기여할 수 없는 건 쓰지 말아야 한다.”

-작가란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의 정의는 ‘그 시대의 스승’이다. 또 그 시대의 등불이며 나침반이다. 모든 작가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위대한 작품으로 업적을 세웠을 때만 그렇게 대접받는다. 나는 고전 소설 『춘향전』 『홍길동전』과 홍명희의 『임꺽정』을 좋아한다. 『춘향전』은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회 변혁 소설이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은.
“빅토르 위고다.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위고는 프랑스의 자존심이다. 프랑스 위인들이 묻힌 묘지 ‘팡테옹’에 위고만 유일하게 부인과 합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위고는 ‘예술은 아름답다, 그러나 진보를 위한 예술은 더 아름답다’고 했다. 소설은 그 시대 인간이 달성해야 할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민중과 함께 있으라. 반 발짝만 먼저 가라,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얼마나 멋있나.”

-부인 얘기가 나왔으니 묻고 싶다. 부인 김초혜 시인은 어떤 분인가.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시인 아내를 맞이해 여왕처럼 모시고 산다. 원고를 쓰면 아내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다. 아내는 내 작품의 첫 독자이자 감시자, 교정자, 충고자다. 아내가 고치라면 반드시 고친다. 반대로 내가 아내의 작품을 보고 ‘고치라’고 하면 아내는 절대 안 고친다. ‘소설 쓰는 사람이 시를 뭘 아나’면서 말이다.(웃음) 아내는 동국대 국문학과 동창생이다. 일등병 시절 면회 온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용감하게 결혼했다. 병장들이 ‘우리보다 먼저 장가 갔다’며 나를 곡괭이 자루로 50대를 때려 쓰러졌다.(웃음) 아내는 내가 가난하고, 힘들고, 핍박 받았을 때 작가 정신을 독려하고, 힘이 돼줬다.”

-학창 시절 작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선생이 있나.
“황순원 선생이다. 후배들에게 흠을 보이지 않는 삶을 사셨다. 작품도 좋았다. 무엇보다 문단정치를 하지 않으셨다.”

-작품을 구상할 때 취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정확하고 치밀하게 취재한다. 전공자도 만나고, 역사학자도 만난다. 발로 뛰어 다니며 확인한다. 톨스토이도 위고도 철저히 취재하고 글을 쓴 작가다.”

-집필은 어떻게 하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25~30매를 집중해서 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과 식사를 한 뒤 9시에 서재로 출근한다. 새벽 2~3시까지 죽을 힘을 다해 쓴다. 20년 동안 세상과 절연하고 장편 3편을 썼다. 그때 술을 끊었다. 술을 마시면 이틀 뒤까지 꼬박 사흘을 숙취로 날려버린다. 원고 100매가 사라진다. 그게 싫었다. 하도 열심히 썼더니 팔에 마비가 와 수술을 받아야 했다.”

-노벨 문학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매년 10월 말 노벨 문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나는 굴욕감을 느낀다. 우리가 노벨상에 너무 주눅들어 있지 않나 싶다. 노벨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상자의 90%가 백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왜 받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나? 노벨상보다는 우리 문학을 스스로 사랑하고 키우는 데 더 열성을 가져야 한다.”

-현재 한국 문학을 평가한다면.
“19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이 왜소해지고 있다. 장편 소설이 전부 1인칭이다. 1인이 사라지면 소설이 사라지는 구조다. 장편은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뤄야 한다. 또 소재가 다양해야 하고 수많은 주인공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전부 개인 소설화되고 있다. 공동체나 사회의 모순, 우리 역사를 치열하게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 요즘 학생들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보고 창작을 공부한다는데 걱정이다.”

-후배 작가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너무 좋다. 영혼을 담아 치열하게 노력하길 바란다. 괴테의 말처럼 80세가 돼도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90세를 넘긴 작가라도 작품에선 나이를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좋은 영화가 나오면 1000만 명이 보고, 뮤지컬도 100만 명쯤 본다. 좋은 소설이 없는 것이지, 국민이 책을 안 읽거나 소설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노력하라. 시대의 등불이 되려면 말이다.”

-요즘 국민은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내 다음 작품도 교육문제를 다룰 것이다.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한 해 20조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이 1위인데, 자살자의 절반이 10대다. 성적 때문이다. 사진 예술가가 꿈인 중 1년생에게 부모는 판검사가 되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온 식구를 불태워 죽였다. 이 땅에 교육혁명을 이루는 게 아이들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10대인 손자에게 교육 관련 글을 쓴다고 했더니 그 애가 ‘윤허’했다. 용기 백배해 글을 쓰려고 한다.(웃음)”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마디 한다면.
“세 가지다. 우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서 달라. 우리 국민이 지금 불행한 이유의 첫째가 비정규직 문제다. 정부와 여야가 힘을 모아 정규직 전환 국민 운동을 일으키길 바란다. 둘째, 남북관계 개선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닦은 평화통일의 길을 걷기 바란다. 개성공단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을 해결하고 압록강변과 동·서 해안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셋째는 인사다. 능력 있는 인재는 많다. 대통령이 된 이상 마음을 크게 쓰고 정파를 초월해 국가적 인재를 쓰길 바란다.”

-‘행복한 인생’이 국가적 화두다.
“돈이 없어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못 간다고 불행해하지 말라. 배를 타고 가면 비행기로는 못 보는 아름다운 산하를 볼 수 있다. 망망대해와 수평선,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 많이 갖는 것, 높이 빨리 가는 것 대신 자신의 속도로 인생을 살면 아름다운 것을 수없이 만난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거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신의 속도로 해나가기 위해선 독서하기를 권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짜리 연극이다. 매 순간 긴장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면 목표는 이뤄진다. 설령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후회 없는 인생이 된다. ‘생활의 달인’이란 TV프로그램을 좋아한다. 필부도 노력하면 신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메시지가 담겼기 때문이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1514&cat_code=0105&start_year=2013&start_month=09&end_year=2013&end_month=09&press_no=&page=1

 

 

“국내의 풍부한 유학파 석·박사 활용 정부, 효율적 번역 시스템 만들어야”

번역의 중요성 강조하는 한수산 작가

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 제341호 | 20130922 입력
 

한수산 1946년 강원도 인제 출생. 춘천고·경희대 영문과 졸업. 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4월의 끝』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풍부한 감성과 화려한 문체로 7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81년 중앙일보에 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중 반정부 여론을 선동하려 했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작가 조정래씨가 “노벨 문학상을 바라는 대신 우리 문학의 내실을 키우는 데 열성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 구체적인 비결을 듣기 위해 작가 한수산(67·사진)씨를 만났다. 한씨는 “일본은 자국 작가들의 작품을 발 빠르게 번역해 외국에 소개하고 해외 신간 서적도 나오자마자 번역·보급하는 시스템을 통해 풍요로운 지적 토양을 구축했다. 일본 작가가 45년 전 노벨 문학상(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을 가져간 건 이런 토양에 힘입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도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석·박사들이 해외 논문을 번역하도록 지원해주고, 출판계가 해외 신간 서적을 번역하는 걸 장려하면 우리 문학과 문화가 크게 신장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사회적 교양을 갖고 살고 싶어’ 뒤늦게 대학에 갔다고 했는데.
“중·고교생 시절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시골에 땅이 있어 농사를 지으려고 대학엔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람이 살면서 교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경희대에 들어갔다. 아침 8시에 학교에 가 교양 강좌를 들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떻게 작가가 됐나.
“1971년 가을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이 내려지면서 캠퍼스에 군인들이 진주했다. 교문이 닫힌 가운데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암울했다. ‘뭘 하고 살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친구 한 명은 사찰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빈 강의실에 몰래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에 홀린 듯 한 달 반 동안 16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그 소설 가운데 하나가 그해 겨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우리 문학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가는 우리 역사에 대한 치열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소재의 보고(寶庫)를 갖고 있다. 재해석하고, 재조명하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문학을 통해 역사가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노벨 문학상은 어떻게 보나.
“노벨 문학상을 놓고 국가적으로 난리 칠 일은 아니다. 문학은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문화 전반이 성숙해지면 길이 열리는 거다. 윌레 소잉카는 나이지리아 사람이지만 영국 옥스퍼드대를 나와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나라 민담을 현대화한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탔다. 문학은 상이 아니라 내용, 즉 작가가 얼마나 자신의 세계를 갖고 썼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문학이 노벨상에 다가가려면 영어 번역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 문학이 영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여러 나라에서 많은 독자에게 읽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작품 가운데 영어로 번역돼 해외에서 출판된 작품이 몇 개나 되나. 손에 꼽을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번역 시스템이 대단한데.
“분야를 막론하고 외국 신간 서적이 가장 빨리 번역돼 출판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번역전문 업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일본 소설이 영어로, 프랑스어로 가장 빨리 해외에 보급된다. 예를 들어 ‘선(禪)’은 한국이 강하지만, 미국에 가보면 선 관련 서적은 전부 일본인이 쓴 책이다. 일본이 문화강국이 된 건 서양 문물을 이렇게 빠르게 받아들인 결과다. 특히 효율적인 번역 시스템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도 국가적으로 번역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긴가.
“국민 모두가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얘기다. 또 영어로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국내에 몇 명이나 되겠나? 출판사도 이익이 날 책만 번역해 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지식이 국가적으로 축적되는 양은 적어진다. 해결책은 해외유학을 마쳤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놀고 있는 석·박사들이 해외 논문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고 국내의 논문들을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도록 정부나 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해주는 거다. 정부는 출판계가 문학뿐 아니라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의 해외 신간 서적을 신속히 번역해 출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 문학은 어떻게 다뤄야 하나.
“제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철저히 반성했다. 그러나 독일이 위대하다기보다는 유대인이 위대한 거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다룬 소설·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는가? 우리는 왜 일제 식민지 시대를 다룬 위대한 작품이 많이 나오지 못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일본이 전 세계 앞에 반성하고, 사죄할 때까지 관련 역사를 다룬 작품이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역사는 살아있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삶을 관찰하고, 보고, 쓰는 사람이다. 작품의 주인공 삶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전취재·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나는 이걸 아주 중시한다. 『부초』란 작품은 서커스단의 얘기인데, 3년 동안 서커스 단원들과 여관 생활을 함께하고 같이 자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요즘 우리 작가들이 취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풍토는 문제다.”

-일관되게 사회적 교양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먹기만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 무엇’이 있는 삶을 추구할 때 향기로운 삶이 탄생한다. 어릴 때 가구를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가구처럼 사회에 쓰임새가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대학이란 돈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사회에 유용한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추상명사를 갖고 살 때 문명화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보통 직장이나 월급ㆍ회사ㆍ가정 등 보통명사를 갖고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보통명사만으론 살 수 없다. 애국이나 우정ㆍ의리ㆍ가치ㆍ기쁨 등 추상명사를 추구하며 살아갈 때 문명화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후배 작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역사에 치열하게 접근하기 바란다. 또 새 장르를 개척하길 바란다. 종이 책의 시대는 끝난 것 아닌가 싶다. 시나 소설, 희곡 같이 과거에 만들어진 장르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해외의 좋은 작품들을 원어로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행복한 인생이란 뭘까.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평화가 행복이다. 평화로울 수 있는 게 뭘까? 작게 가지라고 하지만 조금 갖는 건 쉽다. 많이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양으로 따질 문제가 아닌 거다. 다만 돈과 지위로써 행복을 찾으면 불행해지는 건 확실하다. 평화는 편해지는 거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을 알면 살지 못하는 거다. ‘영원히 머물 것처럼 일하고, 내일 떠날 것처럼 준비하겠다’는 말을 늘 새기며 산다. 나이 들면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이상 징후가 하나씩 는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가는 걸 본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데 인위적으로 목숨을 연장하는 게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인지 의문이다. 나는 그냥 묘비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이전글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⑬ 가야금 명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 이광재 객원교수 (20130908. 중앙sunday)
다음글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15>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 이광재 객원교수 (20131006. 중앙sunday)
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확인
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