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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왜 피케티에 열광하는가...불평등 구조에 대한 저항- 이연호 원장 (20141017 데일리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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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0 00:00:00

[데일리한국] 청년들은 왜 피케티에 열광하는가...불평등 구조에 대한 저항

[전문가 시사 칼럼] 일부 청년들은 아직도 마르크시즘에 관심

불평등 대물림 현상으로 가난한 2030세대의 미래 불투명
중장년층, 자식 세대 위해 양극화 막기 위한 새 정책 설계해야

이연호 교수(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장)

입력시간 : 2014/10/17 17:58:08 수정시간 : 2014.10.20 15:54:50


 

[이연호 교수의 시사 칼럼]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토마 피케티교수가 서울의 한 대학강연을 했다. 토요일 주말 오후였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청중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프랑스영어를 하는 피케티 교수의 쉽지 않은 정치경제학 강의를 들었다. 그날 행사의 열기를 더해준 또 하나의 광경이 있었다면 마르크시즘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대량 출현이었다. 사실 이들의 등장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학회 참석을 위해 몇몇 지방대학에 갔을 때 수년 전부터 어김없이 목격한 것이 마르크시즘을 공부하는 모임에 관한 포스터였다. 드디어 한국에서 마르크스가 부활하려 하고 있었다.

피케티 강연회와 젊은 마르크시스트들의 대량 출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피케티는 마르크시스트로 분류되는 학자는 아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자본 불평등의 문제를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진보적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제시하는 해결 방법이 마르크시스트 같지도 않고, 혁명적이지도 않다. 부유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재정 정책을 통해 고용을 증진시키고 재분배를 달성하자는 케인즈주의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세대 마르크시스트들은 강연회 입구에서 마르크시즘 연구서를 홍보하는 전단을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피케티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은 불평등 구조에 대한 저항

한국에서 목격된 피케티 현상은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좌절을 반영한다. 그의 저서는 소수의 지식인 기성세대와 다수의 일반 청년세대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청년세대의 관심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와 경제에 고착되어 있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저항에 가깝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책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과 책의 제목을 빌어 청년들은 우리의 고질적 사회 병폐를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케티는 서구 특히 미국을 분석하면서 교육의 불평등과 고액연봉자의 등장을 경제적 불평등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했다. 우리의 불평등양상은 어떠할까? 우리나라의 상위 1% 소득점유율은 12.23%로 미국(19.34%), 영국(12.93%) 다음이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은 44.87%로 미국(48.16%) 다음으로 2위이고, 3위인 일본(40.50%)보다 높다. 그런데 여기에 자산까지 포함을 시키면 더 심각한 데이터가 나올 것이란 예측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불평등 정도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 우리 자본주의의 성격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은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고 국가통합을 해칠 개연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불평등의 대물림 현상...가난한 2030세대 상당한 부담

필자가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하는 문제가 불평등의 대물림 현상이다. 인구 통계를 보면 2013년에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를 형성하는 50대 인구는 약 800만명이었다. 40대는 약 890만명으로 약간 더 많지만, 30대가 되면 약 800만으로 다시 감소한다. 20대는 658만명으로, 10대는 약 622만명 그리고 10세 이하는 460만으로 본격 감소한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 청년 빈곤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30대 초반과 20대 청년들은 대부분 50대 베이비부머들의 자녀들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세금으로 부양해야 할 부모의 세대보다 인구가 적고 자신들 이후의 세대보다는 인구가 많아 위아래로 향후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직장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과 그렇지 못한 이들 간에는 더욱 더 큰 불평등이 나타날 전망이다. 가난한 부모를 둔 청년들은 위와 아래 세대를 위해 기여만 하다가 자신의 자산을 형성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빈곤한 노후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도 옛말이다. 로스쿨이 비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시 준비도 월 100만원 넘게 든다. 이제 좋은 대학을 다닌다고 좋은 직장이 보장되던 시대도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또는 계급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관측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 청년들의 고민이다.

마르크스 부활 어렵고 극도의 개인주의로 흘러

안타까운 것은 청년 세대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의 보조를 취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서양과는 달리 대부분의 청년들이 부모에게 얹혀 사는 캥거루족이다 보니 그들에게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또 이들은 선거권자의 수적 측면에서 중장년층에 비해 크게 열세여서 정치권의 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당들이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청년층을 배려하겠다고 했지만 별반 지켜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숫적으로도 많고 이념적으로 더 잘 무장된 형님 그리고 아버지 세대와 대립해봐야 결과는 자명하다. 극도로 분열된 이들은 그래서 세대 차원의 집단행동을 할 수가 없다. 각자 알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 길을 찾아 나설 뿐이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이들의 문화다.

우리나라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경제적 불평등 현상을 보면서 마르크스가 다시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다. 의식화되고 숫자도 많았던 옛날의 386세대들이 자신보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던 부모들을 향해 혁명을 이야기하던 그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자식 세대 위해 새 정책 설계해야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이제 중장년 세대가 보다 세대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자고. 우리의 조카와 자식과 미래의 손주들을 위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2-30년 이후의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양극화된 사회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사회가 이분화되면 공익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갈등은 심화되고 정치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로써 경제성장에 의한 성취는 단번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우리가 받을 연금을 줄이고 더 많은 세금을 내더라도 우리의 다음 세대가 보다 나은 대한민국에서 살 수만 있다면 감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고통이 아닐까? 내리 사랑이 해답이다.

■이연호 교수 프로필

연세대 정치학과- 캠브리지대학 박사-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현)

http://daily.hankooki.com/lpage/column/201410/dh201410171758081411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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