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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조건 - 이연호 원장 (20150430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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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6 00:00:00

[매경의 창]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조건

기사입력 2015.04.30 17:24:42 | 최종수정 2015.04.30 17:29:51


독일의 천재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19년 뮌헨대학의 한 학생단체에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관한 강연을 했다.

후에 이 강연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이 책에서 그가 묘사한 정치가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성인군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세상의 비합리성`을 믿은 그는 선한 것에서 선한 것만이 그리고 악한 것에서 악한 것만이 나오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치가는 선악이 혼재하는 현실 속에서 활동해야만 하는 존재다. 플라톤적 철인은 일반인이 범접 못할 지혜와 덕을 가지고 고고하게 교화를 하지만, 정치가는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갑론을박을 해야 한다. 정치는 사회집단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분배하는 과정이니 세속적인 사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베버는 이런 현실 속에서 활동해야 하는 정치가의 자질로 세 가지를 들었다.

`열정 또는 대의에 대한 헌신, 책임의식에 입각한 행동, 사태를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 추구가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자신의 허영심과 자아도취에 빠져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가의 타락이 발생한다고 설파했다.

고(故) 성완종 회장 스캔들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일반 여론은 정치인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인이 순결하고 깨끗하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강의에서 정치인을 사회미화원에 비유하곤 한다.

마치 환경미화원들이 주변의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듯이 정치인도 사회의 불결하고 당혹스러운 이슈들을 해결해야 하므로 손에는 장갑을 껴야 하고 옷도 얼굴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정치는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하고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만일 정치가 너무나 조용하다면 민주주의가 고장 났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사안은 심각하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치자금 문제로 범법을 했으니 정치가의 타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을 임의로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으며, 공명정대하게 운용하고 회계를 공개해야 하며, 사적 용도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 만일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돈이 투명하지 않게 오고 간 것이 사실이라면 적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물론 불법자금을 제공한 성 회장의 잘못도 명백하다. 그러나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현직 정치인들이 불법을 알고도 자금을 받았으니 그 책임을 더 크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이다. 2013년 현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67개국 중 21위였다.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순위가 높았다. 그러나 같은 해에 조사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177개국 중 46위였다. 게다가 2009년의 39위에서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적 제도는 개선되고 있으나 부패 정도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부조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주체도 정치인, 그리고 부패의 주체도 정치인이라면 도대체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웃자란 제도와는 달리 우리의 시민의식도 정치윤리도 진정으로 민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가는 무엇보다도 좋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베버가 말했듯이 국가의 물리력은 악마적 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정치를 위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기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정치가인가?

[이연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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