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East and West Studies • Yonsei University

언론소식

[매경의 창] 의회 민주주의 vs 의회 포퓰리즘 - 이연호 원장 (20150604 매일경제)
  • 관리자
  • |
  • 2044
  • |
  • 2015-06-16 00:00:00

[매경의 창] 의회 민주주의 vs 의회 포퓰리즘

기사입력 2015.06.04 17:17:28  | 최종수정  2015.06.04 17:19:04


민주주의의 적은 권위주의 또는 독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무서운 적은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저서 국가론에서 민주주의를 잘못된 국가체제 중의 하나로 분류했던 이유도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양자는 공통점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둘 다 유권자의 광범위한 지지를 기반으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양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시민들의 손에 있다는 원칙에 서서 시민 모두의 이익, 즉 공익을 정의하고 이를 정직하게 구현하는 체제이다. 반면에 포퓰리즘은 겉으로는 공익을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대중을 호도하고 정치인 자신의 권력쟁취를 위해 시민을 동원하는 체제이다.

우리 국회는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시민들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하는 일은 의회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권한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작업들로 보인다.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한다면서 국민연금개혁 이슈나 세월호 이슈를 끌어들이는 것은 야당의 인기몰이를 위한 작업일 뿐이다.

또 정부가 만든 시행령의 수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회법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켜 여야가 합심하여 이 시점에 행정부 길들이기를 하는 것도 일반 시민들의 이익과는 정말 한참이나 동떨어진 일이다.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은 심의에 있다.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시민들이 국가 정책을 만드는 일에 전념할 여력도 없고 전문적인 지식도 없으니 대표를 국회에 보내 충분하게 심의하고 공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자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지만 고도의 웅변술을 갖춘 선동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낯부끄러운 일도 많았다고 한다. 의회민주주의의 탄생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역시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즉 시민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국회가 주인의 이익을 변호하지 않고 정작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 말이다.

의회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전락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시민을 대표하는 권력을 지닌 국회는 언제든 자신들의 사익을 공익으로 위장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시민교육과 정치교육을 결여한 의원들도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시민들이 이들을 감시하는 방법밖에 없다. 특히 언론, 학자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눈을 부릅뜨고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치권력에 쓴소리 할 학자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교수들은 논문 생산 경쟁에 내몰린 지식노동자에 불과하다. 시민사회조직 역시 우리나라에서 민중이 시민이라는 용어를 대체하면서 객관성을 상실했다. 촛불시위의 파괴력을 경험한 정부도 일반 시민들도 이들을 경계한다. 게다가 시민교육을 위한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시민교육을 담당할 인문사회 관련 학과들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통폐합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남아 있는 권력파수꾼은 언론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 혼자서 이 싸움을 버텨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정치구도는 정치엘리트와 관료엘리트가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로 정비되고 있다. 만일 의원내각제개헌마저 된다면 양자 간에 균형자 역할을 하던 대통령이라는 제도도 사라질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현재는 OECD의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시민들이 정치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두 엘리트집단은 누구를 위해 일을 하게 될까? 사회 현상을 읽지도 못하고 생업에 종사하기 바쁜 시민들을 볼모로 민주주의를 가장한 포퓰리즘이 등장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답은 시민교육이다. 깨어 있는 시민이 없이는 궁극적으로 의회 포퓰리즘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연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538419

이전글 [매경의 창]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조건 - 이연호 원장 (20150430 매일경제)
다음글 [매경의 창] 정치인과 공무원은 대오각성하라 - 이연호 원장 (20150702 매일경제)
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확인
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