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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혁신적 관료제를 생각한다 - 이연호 원장 (20140417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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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8 00:00:00

[매경의 창] 혁신적 관료제를 생각한다

기사입력 2014.04.17 17:15:29 | 최종수정 2014.04.17 17:22:58  

 

학교 보직업무를 하다 보면 관청이나 지자체 의회 등을 접촉하게 된다. 학자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특히 민원인 입장에서 공무원을 상대하다 보면 피상적으로만 알던 그들의 진짜 모습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 그들은 대부분 새로운 일을 시도하느라 물의를 일으키기보다는 대과 없이 임기를 마치는 데 집중한다. 고시 출신 엘리트라면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인데 이처럼 수동적인 태도를 갖는 데에는 제도 문제도 크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압축적 경제 성장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한 학자는 한국의 관료제가 사회의 각 분야와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어 약탈적 권위주의 국가로 추락하기보다는 자비롭고 효율적인 발전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네트워크 덕분에 국가 정책을 시장과 사회 분야에 잘 설득할 수 있었고 따라서 관료들이 자율성을 갖고 주도적으로 국사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정부와 민간 사이의 네트워크가 더 이상 순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지금처럼 정부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상황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혁신을 시도하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증가한다. 그리고 심지어 관료들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줄 인센티브를 획득하려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예컨대 규제를 강화해 자신의 부처 권한을 강화하거나 퇴임 후 자리를 마련하고자 시도한다. 우리는 이제 네트워크의 역기능으로 인해 국가와 경제의 효율이 저하되는 단계를 경험하고 있다.

성공은 묻히고 실패만 부각되는 것이 정부 조직의 현실이다. 그래서 잘못 결재했다가 승진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우려임을 이해해야 한다. 가급적 논란이 될 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견디면 고시 출신 공무원은 임용기수에 편승한 승진, 사기업보다 긴 근무연한과 후한 연금 그리고 퇴임 이후 산하기관의 장으로 근무하는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러한 인센티브를 확실하게 제공할 사안에 대해서만, 그리고 자신이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규제라는 차단막을 살짝 거두어 주려는 동기가 생긴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누가 창의적인 혁신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고위 관료제도 개혁 방안이 체계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의 시작은 이들을 일종의 이익집단으로 인정하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익을 지키는 애국자라는 부담을 더 이상 강요하지 말고, 그들도 수입과 승진, 안정된 노후를 추구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또 관료제가 하나의 이익집단이라면 경쟁에 노출돼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우리의 관료제는 고시 순혈주의에 입각해 있다. 충원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과했으므로 더 이상 외부로부터의 경쟁은 필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경쟁 없이는 창조도 혁신도 없다. 고시 출신 공무원이 전문가 출신 공무원과 고시프리미엄을 누리지 않고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대신 이 경쟁에서 성공한 공무원이라면 민간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이직 기회를 충분하게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무사안일만 추구하던 공무원이 낙하산 인사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문제지 능력 있는 전직 관료라면 오히려 적극 활용돼야 한다.

지금 규제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핵심은 규제의 제거보다는 합리적인 운용이다. 규제는 정치인도 만들고 관료도 만드나 결국 운용의 주체는 공무원이다. 관료제 개혁 방안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부의 규제 개혁 캠페인은 또 하나의 야단법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연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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